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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글] [한겨레] 세월호를 이만 잊으려는 그대에게 [똑똑! 한국사회]

작성일: 2024-04-16조회: 373

방혜린 | 군인권센터 국방감시팀장

10년 전 4월16일의 날씨는 무척이나 화창했다. 영내로 복귀하기 위해 차에 타는데, 차에서 라디오를 듣고 있던 운전병이 흥분한 목소리로 나에게 전했다. “인사과장님, 인천에서 수학여행 가던 배가 침몰했답니다.” “진짜? 어떡해?” “한 300명 탔다는데, 근데 다 구조했답니다! 얘들은 수학여행 이빨거리(자랑, 허세 부릴 거리를 뜻하는 해병대 은어) 생기겠습니다.” 운전병과 나는 복귀하는 차량에서 봄바람을 맞으며 수학여행 가기 좋은 날씨라는 태평한 소리를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소식이 이빨거리가 아닌, 굉장한 규모의 사회적 참사가 될 것을 전혀 몰랐다. 퇴근 뒤 뉴스채널 보도를 보고 나서야 ‘전원 구조’는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4월17일부터 온갖 지시와 공문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공문은 ‘안전’이라는 글자 안에서 허락된 모든 내용에 대해 지시했고, 두서도 없이 여러가지를 반복적으로 요청했다. 당장 부대 시설 안전 진단해서 보고하라, 부대 안전장구 상태를 확인하라, 부대원 전원에 대한 신상 면담을 실시하고 근거를 남겨놔라, 사고 우려자를 확인해서 조치하고 보고하라… 2014년 그해에만 부대 전체 안전 진단을 족히 열번은 넘게 한 것 같다. 평소 같으면 상·하반기 두차례, 그리고 재난에 대비한 수시 점검 정도만 몇차례 더 했을 일이다. 안전 진단에 대한 지시는 세월호 구조 현황이 절망스러워질수록, 세월호의 침몰을 둘러싼 의혹들이 커질수록 더 잦은 빈도로 지시되었다. 이전 진단의 후속 조치가 채 완료되지도 않았는데 새로운 지시가 내려왔다. 

위에선 내용보다도 안전 진단을 했다는 사실 자체, 이 결과를 보고받았다는 자체가 더 중요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자꾸 반복된 지시를 내리면, 어느 순간 받는 쪽에선 요령껏 해야겠다는 마음이 싹트기 마련이다. 세월호 참사의 여파와 후속 조치가 계속 이어지고 있던 그해 6월, 강원도 고성의 22사단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세간엔 ‘임 병장 사건’으로 알려진 바로 그 사건이다. 애초 범인 임 병장은 긴장도가 높고 장전된 총기와 가까이 지내는 지오피(GOP)에 투입하기엔 무리가 있는 ‘에이(A)급 관심병사’로 분류됐다가, 투입을 앞두고 비(B)급으로 조정됐다. 사고 직후 일각에서는 지오피 투입 병력 확보를 위해 무책임하게 등급을 상향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육군 수사에서도 임 병장에 대한 집단따돌림 진술이 확인됐다. 결국 22사단 총기난사 사건은 인원과 총기류 관리 모든 면에서 총체적으로 발생한 관리 부실과 방치에서 비롯한 비극이었다. 그렇게 모두가 안전, 안전 난리를 쳤던 바로 2014년 그해에 말이다.

최근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이 출간한 책 ‘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이 고통의 기록을 정면으로 통과하지 않고서 우리는 그 어디로도 갈 수 없다. 참사의 기억은 미래로 향하는 우리의 발목을 잡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순응하려는 우리의 고개를 붙잡아 세운다. (중략) 우리가 이 기록과 기억에서 도망치려 할 때, 하던 대로 하고 살던 대로 살려 할 때, 한국 사회는 2014년 4월15일 세월호가 출항했던 그 밤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참사를 불러온 사회구조를 재생산하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다.”

세월호 염불 좀 그만하라며, 교통사고에 왜 자꾸 의미를 보태주냐는 말을 들을 때마다 2014년 4월16일 이후,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쏟아졌던 온갖 공문, “또야?”라며 피로해하던 그때를 되새겨본다. 한편 그해, 숱한 점검이 반복됐음에도 불구하고 아군의 총에 맞아 죽은 장병과 그 총을 쏠 수밖에 없었던 이의 운명에 대해서도.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22년 서울 한복판 이태원에서 죽은 159명,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안전사고들에 대해서도. 기억하지 않아도 되고, 하던 대로 ‘했다 치고’ 살아가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그래서 이만 잊으려는 이들에게 저 문장을 새겨주고 싶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3666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