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 28일 이종섭 주호주 대사가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열리는 방산협력 주요 공관장 합동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승강기에 탑승하자 카메라가 집중되고 있다. ⓒ 권우성
주호주 대사를 사임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변호인을 통해 자신과 관련한 의혹에 반박하는 입장문을 계속 발표하고 있다. 주된 주장 중 하나가 '2022년 시행된 개정 군사법원법에 따라 군에는 사망 사건 수사권이 없고, 따라서 수사권이 없는 해병대 수사단장을 대상으로 하는 수사외압은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변호인은 4월 17일 자 입장문에서도 "군에 수사권이 없기에 소위 '수사외압 의혹'을 주장하는 민주당 고발 내용은 정치 공세에 불과하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개정 군사법원법 몰이해에서 비롯된 억지 주장"이라 비판했다.
이러한 주장은 이 전 장관만 되뇌는 것이 아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도 지난 3일 언론 인터뷰에 출연해 특검법 통과가 부당하다며 "군 내 사고를 군인이 직접 수사하는 것을 믿지 못하겠으니 경찰이 수사하도록 하자는 게 법 취지"라던가 "(해병대 수사단이) 수사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는 말을 남겼다.
국민의힘 유상범 의원도 4월 30일 언론 인터뷰에서 "채 상병 사건 같은 경우에는 군 경찰이 수사권이 아예 없다"고 말했다. 유 의원은 2021년 군사법원법 개정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으로 개정안 논의 과정에서 적극적 역할을 한 사람이기도 하다. 4월 22일에는 같은 내용으로 국민의힘 22대 국회 당선자를 대상으로 하는 '특검법 불가론' 강의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윤석열 대통령도 참모들에게 '수사권이 경찰에 있는데 해병대 수사단이 월권을 한 것'이라 말했다고 한다. 이후로 대통령실에서는 '설사 대통령실에서 관여했더라도 장관 결재와 이첩 등 절차상 문제를 조정한 것인데 뭐가 문제냐'는 논리가 섰다고 한다.
총선을 전후로 대통령, 정부, 여당이 한목소리로 개정 군사법원법을 들먹이며 '해병대 수사단에는 수사권이 없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특검 도입이 가시화되자 사안을 개정 군사법원법에 대한 해석 차이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군사법원법이 개정되기까지
▲ 2021년 8월 31일 군사법원법 개정안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통과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그러나 이야말로 개정 군사법원법의 내용을 왜곡하는 주장들이다. 일단 개정 군사법원법이 국회에서 논의되던 2021년 상황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
군사법원법 개정은 2021년 5월에 발생한 공군 이예람 중사 성추행 사망 사건을 계기로 촉발되었다. 원래 군대에서 벌어진 범죄는 민간과 달리 군사경찰(과거 헌병), 군검찰이 수사하고 군사법원이 1, 2심 재판을 맡았다. 모두 국방부 소속으로 군의 통제를 받았다.
2021년 3월 이 중사는 상급자로부터 성추행을 당했고 곧바로 부서장에게 이를 신고했다. 그러나 부서장은 도리어 가해자 편을 들어 피해자를 회유, 압박하며 지휘관에게 피해사실을 보고하지 않았다.
참다못한 이 중사 가족이 부서장에게 항의해 뒤늦게 보고가 이뤄졌고 군사경찰과 군검찰의 수사가 시작됐지만 부대의 허술한 피해자 보호조치로 가해자와 상급자들의 2차 가해가 이 중사를 코너로 몰았고, 군검찰은 이를 다 알고 있었으면서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결국 이 중사는 사건 발생일로부터 80일이 지난 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이후 사망 책임 소재를 가리는 과정에서 군의 독자적 사법·수사체계에 대한 문제제기가 거세게 이뤄졌다. 사실 독립성을 결여한 군사법체계에 대한 비판은 민주화 이후 군 안팎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고, 2014년 윤 일병 사건을 계기로 일부 독소조항이 개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전시에만 군사법체계를 운영하고, 평시에는 민간에서 수사하고 재판하자는 근본 대책은 국방부의 거센 반대로 늘 좌초되었다.
2021년에도 마찬가지였다. 이 중사 유가족을 위시해 국방부가 대책 마련을 위해 전문가로 구성한 '민관군 합동위원회', 군 사망사건 유가족, 인권단체는 한목소리로 평시 군사법체계 민간 이관을 주장했다.
당시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도 군사범죄를 제외한 모든 군인 범죄의 수사, 재판 관할을 민간으로 이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러나 국방부는 거세게 반대했고 야당이던 국민의힘도 함께였다. 앞서 언급한 유상범 의원이 이때 법사위원으로 맹활약했다. 이들은 군의 특수성을 앞세워 군사법체계 민간 이관을 반대했다.
그러다 타협안으로 만들어진 것이 현재의 개정 군사법원법이다. 국방부는 3대 범죄, 즉 사망의 원인이 되는 범죄, 성범죄, 입대 전 범죄만 관할을 민간으로 이관하는 방안을 마련했고 그대로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법안 통과 이후 시민사회와 학계, 법조계를 망라해 상당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그중 핵심이 바로 '사망의 원인이 되는 범죄'에 관한 것이었다.
무지의 소치거나 거짓말 우롱
▲ 2022년 11월 24일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 국방부 깃발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 연합뉴스
'사망 원인 범죄'라는 개념은 종래에 우리 법체계에 없던 개념으로 국방부가 창조한 것이다. 일단 법적 개념이라기엔 의미가 너무 모호하다. 살인 같은 범죄는 명확한 사망 원인 범죄이지만, 자살이 사망사건의 대부분을 점하고 있는 군에서 가혹행위 등으로 자살한 군인의 경우 가혹행위를 사망 원인으로 봐야 하는지가 명확하지 않다.
결국 이 문제는 사망 원인을 판단하는 역할이 누구에게 있냐는 쟁점으로 이어지는데, 개정법에 따르면 그 역할은 군 수사기관에 있다. 가혹행위와 사망의 인과관계를 판단할 권한은 군에 남겨둔 것이다. '변사사건수사' 권한을 군에 그대로 존치시켰기 때문이다.
병원이 아닌 곳에서 사람이 사망하면 수사기관은 '변사사건 수사'라는 걸 개시한다. 사망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 목적이다. 간혹 뉴스에 변사체가 발견되어 경찰이 '수사'에 돌입했다고 나올 때 그 수사가 바로 '변사사건 수사'를 말한다. 변사수사를 하던 중에 사망과 관련된 범죄사실이 인지되면 바로 범죄수사도 개시한다. 물론 범죄수사가 시작된다고 변사수사가 끝나는 건 아니다. 변사수사는 변사수사대로 망자의 사인을 규명할 때까지 계속된다.
그런데 군사법원법이 어중간하게 개정되면서 군은 변사수사권을 갖고 범죄수사권만 민간으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그래서 범죄수사권 뿐 아니라 변사수사권 관할도 다 민간 경찰로 이관해야 온전한 의미에서 사망사건 수사권을 민간으로 옮기는 효과가 날 수 있을 것이란 지적이 나왔던 것이다.
하지만 국방부는 한사코 이런 지적을 무시했다. 관할을 모호하게 찢어둔 탓에 피해자들만 혼란스러워질 거란 우려도 무시했다. 변사수사권을 가지고 있어야 군이 사망사건 수사 방향을 통제할 수 있을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군의 공정하고 독립적인 수사, 재판을 기대하기 어려워 사법·수사 기능을 민간으로 옮기자고 한 건데, 사망사건의 경우 사실상 변사수사권을 통해 범죄수사로의 이행 여부를 판단할 권한을 군에 남겨둔 반쪽짜리 개혁이 된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2022년 11월에 육군 12사단에서 선임병들의 가혹행위로 극단적 선택에 이르렀던 김상현 이병 총기 사망 사건의 경우 범죄 유형별로 관할이 다 찢어져 관여된 수사기관만 7~8곳에 이르고, 그 탓에 아직도 수사가 마무리되지 않았으며, 군의 변사수사 결과와 민간으로의 범죄인지통보 결과에 대한 유가족의 불신도 큰 상태다. 개정 당시 제기된 문제점이 그대로 노정되고 있는 것이다.
채 상병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와 여당의 주장대로 해병대수사단이 수사권도 없이 월권을 해서 채 상병 사망 사건을 수사하다 임성근 사단장을 범죄 혐의자로 몰아간 것도 아니고, 이종섭 전 장관 말처럼 해병대수사단이 수사가 아닌 '초동 조사'를 한 것에 불과한 것도 아니다.
박정훈 대령을 위시한 해병대수사단이 맡았던 건 변사수사였다. 실종된 채 상병이 하천에서 익사체로 발견되었으니 변사수사권을 가진 해병대수사단이 수사에 착수하는 건 법률로 정해진 수사 절차다. 이에 따라 사망원인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임성근 사단장도, 생존해병들도, 현장간부들도 당연히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해 수사할 수 있다. 이걸 정식 수사가 아니라 단순 조사라고 우기거나, 권한 없는 일을 한 거라 표현하는 건 무지의 소치거나 군사법체계를 잘 모르는 국민들을 거짓말로 우롱하는 것이거나, 둘 중 하나다.
성역 없는 특검 수사가 필요한 이유
▲ 2일 오후 해병대예비역연대 예비역들이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채상병 특검 국민의힘 참여 촉구' 집회를 열었다. 집회 참석자들은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인 국민의힘은 '해병대 채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검법'을 즉각 수용할 것을 촉구했다. ⓒ 이정민
변사수사를 하다가 사망에 영향을 미친 범죄혐의가 인지되면 혐의자, 죄명, 사유를 적시한 '범죄인지통보서'와 범죄인지의 근거가 되는 변사수사기록을 범죄수사권이 있는 민간 경찰에 이첩하는 것이 개정 군사법원법의 정확한 해석이다.
그뿐만 아니라 '범죄 혐의'란 것은 당연히 범행의 주체, 내용은 물론이고 그것이 어떤 죄목에 해당하는지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우리나라는 헌법에 따라 죄형법정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법에 써있는 것만 죄라는 뜻이다. 절차에 따라 범죄인지통보를 하면서 어떤 법률에 써있는 무슨 죄를 범했는지 특정할 수 없다면 그건 '범죄'를 인지했다고 표현할 수가 없다. 혐의자와 죄명을 특정하지 말고 사건을 민간에 이첩하라던 이종섭 전 장관의 지시는 애초에 법체계상 말이 안되는 궤변이다.
해병대수사단은 정해진 법 절차에 따라 변사수사를 성실히 진행하던 중, 임성근 사단장 등 8명의 범죄혐의를 포착해 경북경찰청에 이첩한 것이다. 물론 해병대수사단 범죄 인지 행위와는 별개로 검찰 송치 여부는 범죄수사권을 가진 경북경찰청이 판단할 몫이고, 해병대수사단은 이첩 이후 변사수사를 잘 마무리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이 이첩 과정에 압력이 들어가면서 모든 게 어그러져 버렸다. 군사법원법 개정 당시 변사수사권과 범죄수사권의 관할을 분리하면 군 지휘부가 변사수사권을 이용해 사건을 은폐, 축소할 수 있게 된다는 우려가 현실화 된 것이다. 다만 은폐, 축소의 주체가 군 지휘부가 아니라 대통령실이고, 수사를 맡았던 군 수사기관은 양심에 따라 정직했다는 점이 조금 다를 뿐이다.
이종섭 전 장관의 법무참모로 외압 의혹에 깊게 관여된 유재은 법무관리관은 개정 군사법원법이 만들어질 때에도 법무관리관이었다. 유 법무관리관이 바로 변사수사권과 범죄수사권을 나누는 법안을 성안한 국방부 실무자였다.
그런 그가 이 법의 구조를 몰라서 해병대수사단에 수사권이 없다느니, 수사가 아니라 조사라느니, 혐의자와 범죄를 적시하지 말고 이첩하라는 둥의 해괴한 조언을 장관에게 갖다바쳤을 리 없다. 다 알면서도 대통령의 수사외압이란 중대범죄를 가리기 위해 법 기술자로서 국민을 미혹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는 것이다.
유상범 의원 등 국민의힘 의원들도 마찬가지다. 자기들이 국방부를 위해 군사법개혁을 방해하며 변사수사권을 군에 남겨줘 놓고 이제 와서 군에는 사망사건 수사권이 없다고 우겨대니 집단으로 기억이 상실된 건지, 국민을 우습게 보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일련의 과정에서 분명해진 사실이 있다. 대통령과 참모들, 전 국방부 장관과 그 참모, 여당 국회의원들이 한통속이 되어 똑같은 논리로 사실과 다른 말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모두가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 우연일 리 없다.
해병대수사단에 수사권이 없다는 외압 세력의 주장은 법 해석 논란의 영역이 아니다. 진실과 거짓의 영역일 뿐이다. 그러므로 다 같이 똑같은 거짓말을 한다는 건, 이들이 모두 공범이라는 뜻일 것이다. 성역 없는 특검 수사가 필요한 이유다.